2022년 발간된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이미 33~36억 명의 사람이 기후변화에 매우 취약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기후위기로 타격을 입었을 때 소득과 자산의 손실 비율은 가난한 사람이 부유한 사람보다 더 큽니다. 부유한 사람은 위험에 대비할 수단을 가지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은 위험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온실가스의 80%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주요 20개국(G20)이 배출합니다. 가난한 나라는 온실가스 배출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가볍지만, 기후위험에 노출되어 더 큰 고통을 당합니다.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 적응 역량이 낮은 나라가 그렇지 않은 나라에 견줘 2010~2020년 동안 홍수, 가뭄, 폭풍으로 인한 사망률이 15배나 높다고 했습니다.
세계은행은 기후위기가 2030년까지 1억 3,000만 명 이상의 사람을 빈곤으로 몰아넣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실제로 2019년 생겨난 난민의 4분의 3이 기후위기로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기후위기에 대응하지 않으면 2050년까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남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서만 1억 4,300만 명이 넘는 실향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연령과 성별도 기후위험의 취약성을 결정합니다. 가난한 나라의 여성 대부분은 집 밖에서 연료와 물을 구해야 하므로 기후위험에 더 노출됩니다. 여성은 기후 재난 발생 시 사망률이 남성보다 14배 높으며, 기후위기로 발생한 기후난민 중 80%를 차지합니다. 어린이와 노인도 혹독한 날씨에 더욱더 고통받고 있습니다.
UN 빈곤·인권 담당관 필립 알스턴(Philip Alston)이 2019년 UN 인권협의회(Human Rights Council, HRC)에 제출한 ‘기후변화와 빈곤’에 관한 보고서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과 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사람 간에 기후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에 직면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과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합법적으로 제도화된 반인도적 인종차별과 분리정책으로, 기후위기에 책임 있게 대처하지 않는 정치와 경제도 반인도적 범죄라는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곧 세대 간 인도주의 문제입니다. 기후위기는 원인 유발자와 피해를 보고 위험을 극복해야만 하는 사후처리자가 동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아무 조치도 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기후위기로 모진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IPCC 6차 보고서에서는 지구 가열이 커지면 손실과 피해가 증가해 결국 인간과 자연의 시스템은 적응 한계에 도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구 가열을 2℃로 막는다고 해도 기후위기로 인한 손실과 피해는 불평등하게 분배되며, 3℃ 이상 상승하는 고배출 시나리오에서는 손실과 피해가 빈부에 상관없이 광범위하게 일어나 파국에 빠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인류는 더 많이 생산하는 데는 천재적 재능을 보여 왔으나 더 많이 나누는 데는 무능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후위기는 서로 돌보지 않고 아끼지 않고 나누지 않아 일어납니다. 부유한 나라와 사람은 가난한 나라를 지원해야 합니다. 이는 위계적 원조 차원이 아니라 마땅히 기후위기에 책임지는 인도주의에 기반해야 합니다. 미래세대가 살아갈 여건은 전적으로 우리 기성세대에게 달렸습니다. 바로 지금이 최후의 기회이자 최선의 기회이므로 우리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그 바탕엔 인도주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