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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는 생명 입니다"
인도주의 회복을 위한 제언
사람이 먼저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라고 했다. 버나드 쇼의 말대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 북쪽의 스르지 산(Srd Hill)으로 올랐다. 가히 아드리아 해의 진주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멀리서 볼 때와는 달리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타일 기와는 전연 다른 것이었다. 건물 대부분이 새로 고친 지붕으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간의 무력충돌 시 며칠간 지속된 세르비아의 공습으로 타일로 만든 전통 기와가 대부분 파괴된 까닭이다.
두브로브니크를 바라보며 인도주의를 떠올리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인류의 소중한 문화재가 손상되고 교전 수단의 발전으로 문화재가 파괴될 위험이 커짐에 따라, 기존 인도법협약상의 문화재보호 원칙에 더해 1954년 ‘무력충돌 시 문화재보호를 위한 협약’이 채택된 바 있다. 이 협약은 무력충돌 시 자국 또는 타국의 문화재에 대한 군사적 이용을 금지하고, 공격과 복구(復仇)의 대상으로 하지 말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1991년 세르비아군은 두브로브니크를 무차별 폭격하여, 구시가 건물 824개 중 68%가 포탄을 맞았고 궁전 9개가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주요 시설물 대부분이 손상되었다. 이처럼 전쟁은 인간이 수 세기에 걸쳐 쌓아온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소중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일순간에 무너뜨렸다. 두브로브니크의 문화유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당시 폭격이 알려지면서 유럽인들 사이에 폭격 반대 운동이 벌어졌고, 인간 방어벽을 만들려는 시도까지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1992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보스니아 내전은 20세기 인류사에서 가장 잔인한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은 430만 명의 인구 중 27만 명이 죽고 난민이 230만 명이나 발생하는 엄청난 참화를 불러왔다. 1995년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스레브레니차에서 세르비아군에 의해 8,500명의 이슬람교도가 학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 참화를 초래한 책임자였던 밀로셰비치, 카라지치, 믈라디치 3인은 모두 체포되어 구(舊) 유고형사재판소의 재판을 받았다. 동 재판소는 구(舊) 유고 영토 내에서 자행된 국제인도법 중대 위반자에 대한 기소를 통해 전쟁법 위반, 제노사이드, 인도에 반한 죄 등을 기소 처벌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밀로셰비치는 재판 도중 사망하였지만 카라지치는 40년형을 선고받았고, 믈라디치는 2016년 12월 종신형을 구형받았다. 전쟁범죄자는 끝까지 추적해서 기소 처벌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이 결실을 맺음으로써 국제인도법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 것이다. 이는 인종적·종교적 이유로 타 인종과 이교도를 학살하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지 못함을 보여 주었다. 반인도적 행위에 대한 경각심을 제대로 세우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도주의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의 발전과 국제적십자운동의 시작
인도주의는 인간성의 존중을 해치는 모든 속박과 제한, 억압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는 사상이다. 17세기 르네상스의 인도주의를 거쳐, 산업혁명 후 인간 소외를 극복하기 위한 시민적 휴머니즘으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박애를 기반으로 모든 사안을 ‘인도성(Humanity)’의 관점에서 보려는 세계사적 시각에 이르고 있다. 이 모두가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은 어떠한 방해나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사상이 되었다. 결국 국제인도법은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무력충돌 시 인간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무력사용의 금지를 강행 규범(Jus Cogens)으로 승화시키면서, 전쟁이나 무력충돌을 사전에 막기 위한 규범적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크고 작은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끊이지 않았기에, 국제사회는 국제인도법의 발전과 교육을 통해 인류에 미치는 참화를 예방하고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바탕에 적십자운동이 자리하고 있다.
1859년 사업 문제로 이탈리아를 찾게 된 앙리 뒤낭은 통일 전쟁중이던 이탈리아 솔페리노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위한 구호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과정을 적은 <솔페리노의 회상>에서 전시에 인도적 구호를 할 영구적인 민간구호기관을 만들고, 이 기관이 전장에서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제협약을 만들자고 하였다. 그 결과 1863년 국제적십자위원회가 창설되었고, 1864년에는 제네바협약(육전에서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협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제네바협약은 부상 등으로 전투력을 잃은 군인이나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사람을 인도적으로 대우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모든 종류의 살인·상해·학대 및 고문, 인질로 잡는 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 정상적인 재판 없는 형의 집행 등을 엄격히 금지한다. 부상자 및 병자를 수용하여 간호할 것도 명시하고 있다. 이 모두가 인도주의적 사상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인간의 본성에 귀 기울여야 할 때
아픈 자와 다친 자를 구호하고 치료하려 하는 것은 사람들의 조건반사적 감성 반응이다. 사회적 약자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에 대한 지원과 보호는 인간의 덕목 중에 으뜸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동정이 개인적 차원에서 멈춘다면,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반인도적인 참상은 구체적 해법을 찾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인간의 감성적 반응에 앞서 인도주의 앙양을 통해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쟁이나 무력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인도주의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국제인도법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법이 평화의 수단이고, 인도주의는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한 기반적 이념이므로, 인도주의를 품은 국제인도법은 국제법의 실천 원리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6·25 전쟁 동란에서 40만 명 이상의 국군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종과 종교와 같은 태생적 갈등이 아닌, 인간이 만든 인위적 이념의 충돌이 엄청난 참화를 가져온 것이다. 한반도는 여전히 남북 간 무력충돌의 위험이 상존하기에, 인간의 본성을 되찾기 위한 인도주의 정신이 확산되어야 하는 이유는 남다르다. 한반도에서 두브로브니크나 스레브레니차의 파괴와 만행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주요한 해법이 인도주의 확산이고 국제인도법의 존중임은 부언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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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C SPECIAL
Column
글 _ 성재호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한적십자사
인도법 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