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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내일을 선물할 ‘헌혈’, 그 의미를 새기다
제15회 세계헌혈자의 날 기념식 세계헌혈자의 날을 맞아 대한적십자사는 KBS아트홀에서 기념식을 열었다. ‘생명을 살리는 나눔 헌혈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헌혈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헌혈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함께 그 뜻에 공감하고 마음을 나눈 기념식 현장을 살펴본다.
헌혈,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일
혈액의 중요성을 알리고 헌혈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국제 헌혈운동 관련 기관(국제적십자사연맹, 세계보건기구, 국제헌혈자조직연맹, 국제수혈학회)은 지난 2004년 혈액형을 발견한 칼 랜드 스타이너 박사의 생일인 6월 14일을 세계헌혈자의 날로 제정했다. 지난 6월 14일, 대한적십자사는 세계 헌혈자의 날 60년을 맞아 이날의 의미를 아로새기기 위해 특별한 자리를 마련했다. KBS아트홀에서 ‘생명을 살리는 나눔 헌혈로 하나 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기념식을 연 것이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려 사랑을 실천한 헌혈자들과 헌혈 및 수혈수기 공모전 수상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건복지부장관 표창과 대한적십자사회장 표창을 시상하고, 다양한 축하공연을 꾸렸다.
같은 마음으로 헌혈의 길을 가다
이날 보건복지부장관표창과 대한적십자사회장표창 수상 의 영예를 얻은 헌혈자들은 직업도, 나이도 제각각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꾸준히 헌혈을 하면서, 봉사를 통해 나눔의 의미를 전하거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헌혈 활동을 홍보했다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모두 각기 다른 사연으로 헌혈에 참여한 이들은,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을 전하겠다’는 그 진실한 마음으로 헌혈의 길을 걸어왔다.
이날 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은 헌혈 유공자 김동식 씨는 수상 직후 헌혈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전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 수혈을 받아 생사의 고비를 넘겼다는 그는 그때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헌혈에 임한다고 한다.
“저는 2주에 한 번씩 격주로 헌혈을 하고 있는데요. 누구보다 헌혈의 혜택을 크게 입었던 만큼 ‘헌혈이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확신과 선의를 갖고 헌혈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올해 헌혈자의 수는 290여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0여만 명 늘어났지만, 원활한 혈액 수급을 위해서는 안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의 헌혈을 이끌어내어,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대한적십자사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눈에 보이지 않으면 무뎌지나보다. 어릴 때부터 여러 병을 앓았던 동생은 채 서른이 되기 전에 급성신부전이 발병했다. 신장이식 대기자로 이름을 올리고 수술을 기다리며 여러 가지를 대비했다. 그러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준비하지 못했다.
혈액이었다.
혈액이 부족할 수 있다는 생각자체가 들지 않았다. 늘 몸속에 흐르고 있는 것이어서 그랬을까. 수술 전, 주의사항도 철저히 지키고 대출도 받고, 간병 계획도 세워뒀지만 제일 중요한 혈액은 떠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동생이 급작스럽게 배달오토바이에 부딪치는 사고가 나자 큰 문제가 생겼다. 거의 잘리다시피 한 녀석의 다리는 지혈이 되지 않았다. 수술을 하려면 혈액이 필요했다. 내가 헌혈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신우신염을 앓고 있어 수혈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부모님은 내가 네 살 때 사고로 돌아가셨다. 우리 남매는 친척집을 전전하며 겨우 자립을 했다. 나와 동생은 서로가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헌혈을 부탁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뜻밖의 벽에 부딪치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혈액은 그런 것이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어디서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의학이 눈부시게 발달한 지금도 혈액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오직 혈액뿐이었다. 하나뿐인 피붙이가 언제든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는 환자로 살아왔다. 그럼에도 혈액의 중요성과, 헌혈의 절대적 필요성을 놓치고 있었다. 혈액은 수혈자에게 헌혈자가 주는 생명다리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그 다리를 건너야만 수술도 가능하고, 치료도 할 수 있었다.
긴급하게 돌린 내 연락에 후배 하나가 헐레벌떡 병원으로 달려왔다. 군대 동기들에게 급하게 부탁을 해 헌혈증을 모았다고 했다. 헌혈증으로 가득 찬 봉투를 받아들자 비로소 숨이 크게 터져 나왔다. 그렇게 동생은 무사히 수술을 받았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우리 남매를 위해 모여든 헌혈증에 기적이 깃들어 있었던 것일까. 얼마나 지나지 않아 신장 기증자도 나타났다.
후배는 다시 한 번 내게 헌혈증을 모아주었다. 신장이식 수술의 경우, 혈액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지만 후배는 만약의 사태를 위해 가지고 있으라고 당부했다. 나는 그 헌혈증들을 손에 꽉 쥔 채로 7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을 견뎠다. 이식이 끝난 동생이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까지 내 곁을 지켜준 건 사람들의 마음이 모인 헌혈증이라는 생명다리였다.
이후, 동생은 퇴원할 때까지 모든 과정을 차근차근 이겨냈다. 그러자 안심한 후배가 헌혈증을 돌려받으러 왔다. 나는 모서리가 나달나달 해진 봉투를 새 것으로 교체해 돌려주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손에 꽉 쥐곤 했던 헌혈증들이 또 누군가에게 흘러가 기적이 되길 바랐다.
동생이 회복하면서부터는 밤낮없이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하던 나도 조금은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신우신염 치료를 시작했다. 동생을 생각하며 미루기만 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내가 건강해야 동생도 보살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무엇보다 건강해지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절벽에 매달려 소리치는 것처럼 간절할 때 내 손에 들어왔던 그 헌혈증을 나도 누군가에게 주고 싶었다. 우리 남매가 건넜던 생명다리를 아픈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어서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완치 판정이 나면, 동생의 손을 잡고 헌혈을 하러 갈 것이다. 우리 남매는 마음을 모아 헌혈증을 기부하려고 한다. 당신과 나, 우리의 삶을 지탱할 생명다리가 그렇게 계속 이어지기를 소망하면서 말이다. - 나눔+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