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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 네이팜탄의 화염 속으로
배동미의 시네마 토크
베트남 전쟁, 네이팜탄의 화염 속으로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은 전쟁 중 인간이 사로잡히는 광기와 공포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미군은 살상 무기 ‘네이팜탄’을 투하해 베트남의 야자수 밀림과 마을을 초토화했는데요. 기준과 한계가 없는 전쟁이 얼마나 추악하고 공포스러운지 <지옥의 묵시록>을 통해 이야기해봅니다.
글 배동미(씨네21 기자)
화염 내뿜는 네이팜탄, 가장 잔혹한 살상 무기
후텁지근한 사이공의 호텔, 몽롱하게 눈을 깜빡이는 미군공수부대 대위 윌라드(마틴 신)의 머릿속에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정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후방에서 임무를 기다리며 낮잠을 자고 일어난 윌라드에게 떠오른 이미지는 전장의 베트남이었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소리는 그가 헬기에 내려 전쟁터에 들어선 순간을 떠올리게 했고, 미군의 네이팜탄에 정글이 불타는 잔상까지 소환된 것입니다. 윌라드 대위에게 네이팜탄의 화염은 그만큼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높다랗게 자란 초록빛 야자수들이 오렌지빛에 휩싸였다가 검게 불타버리는 <지옥의 묵시록> 오프닝 시퀀스(Sequence)는 관객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깁니다. 한번 보면 잊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파괴력을 지닌 네이팜탄은 휘발유와 팜유 등을 섞어 젤리처럼 만든 무기입니다. 화력이 엄청나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인들이 몸을 숨긴 정글을 불태우는 데 사용됐습니다. 투하한 곳 반경 30m까지 섭씨 3,000도의 고열로 초토화시키는 것이 바로 네이팜탄입니다.
윌라드는 내레이션으로 “사이공에선 집에 가고 싶고 집에 가면 정글로 돌아올 궁리만 했다”라고 고백하죠. 그만큼 미군은 오랜 기간 베트남 상황에 개입했습니다. 1946년 베트남과 프랑스 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지고,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미국은 인접 국가들이 공산화되는 ‘도미노 붕괴’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프랑스를 원조하기 시작하죠. 1954년 프랑스가 손들고 철수하자 미국은 자유진영인 남베트남에 직접 군사고문단을 파견하며 베트남 전쟁에 끼어듭니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미국은 1965년 윌라드 대위와 같은 자국 군인을 투입하며 베트남 내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우리가 <디어 헌터>, <지옥의 묵시록>과 같은 영화에서 본 베트남전의 참상은 이때를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베트남 공식 발표에 따르면, 1973년 미군이 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하기까지 8년간 사망한 미국 측 사망자는 약 8,000명, 베트남 측 사망자는 약 300만 명에 달합니다.
국제인도법 흔드는 ‘비인도적인 살상 무기’ 여전
<지옥의 묵시록>은 전장을 겪으며 조금씩 인간성이 깎여나가기 시작한 윌라드가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변한 인물들을 만나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공수부대 정보부 소속인 윌라드는 군으로부터 명령을 거부하는 ‘불온한 인사’ 월터 E. 커츠 미군 대령(말론 브란도)을 사살하란 명령을 받는데, 그 과정에서 윌라드는 자신과 커츠의 징검다리에 해당하는 빌 킬고어 중령(로버트 듀발)과 조우합니다. 킬고어는 총알이 빗발치는 와중에 대원들에게 서핑을 강요하는 ‘전쟁광’입니다. 베트남 정글이 네이팜탄으로 불바다가 되는 모습을 흐뭇해하며 이렇게 말할 정도죠. “한번은 언덕에다 12시간 퍼붓고 아침에 깨보니까 싹 쓸어버려 베트콩의 시체조차 없더군. 가솔린 냄새만 진동했어! 언덕 전체에! 그 냄새는 승리의 냄새지!”
베트남전이 끝난 뒤인 1980년, 국제인도법을 보완하기 위해 체결된 ‘과도한 상해나 무차별한 영향을 초래하는 특정 재래식 무기의 사용 금지 또는 제한에 관한 협약(특정 재래식 무기 금지협약)’이 민간인을 상대로 네이팜탄을 비롯한 소이성 무기를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을 만큼 네이팜탄은 위험한 무기였습니다. 네이팜탄은 정밀하게 한 곳을 공격하기보다 주변을 모두 황폐화하고, 본래 목적을 넘어 민간인에게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죠.
네이팜탄으로 불붙은 옷을 벗어 던진 채 알몸으로 울며 도망가는 아홉 살배기를 담은 사진 ‘네이팜탄 소녀’를 많은 분이 기억할 것입니다. 베트남전의 참상을 알리면서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사진이죠. 네이팜탄의 영향권 안에 들어가면 불타 죽거나 질식해 죽는 게 대부분인데, 사진 속 소녀 ‘판티 킴 푹’은 불행 중 다행으로 목숨을 지켰으나 살갗이 벗겨지는 큰 화상을 입었습니다. 올해 예순이 된 킴 푹은 지난해 겨우 화상 흉터 치료를 마쳤다고 합니다. 신체의 65%가 화상을 입었다니 그 고통이 아물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무력충돌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일지라도 국제사회가 사용을 금지하는 무기를 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불가역적으로 과도하고 긴 피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입니다.
2022년 발발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에 네이팜탄을 고도화한 열압력탄이나 2008년 사용이 금지된 폭탄 안에 작은 폭탄들을 넣은 집속탄 등이 사용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어 씁쓸합니다. 전쟁을 치르는 인간은 늘 한계를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국제인도법과 인도주의의 기준은 언제나 중요합니다. 44년 전 영화인 <지옥의 묵시록>이 재현하는 지옥도는 전쟁을 수행하는 이들이 기준과 한계 없이 확전을 거듭하면서 완성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윌라드, 이 전쟁에선 모든 가치가 무너지고 있다. 권력, 이상, 도덕적 가치, 군대의 필요성조차도.” 영화 초반 윌라드에게 임무를 전하는 상관이 베트남전을 통해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리며 한 말은 아직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넵니다.
“모든 인간에겐 한계가 있어. 자네나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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