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자료실
시리아 알레포를 위해 기도하며
배동미의 시네마 토크
2023년 2월 6일 모두가 잠든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강한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국제구호단체는 건물 잔해에 깔려 도움을 기다리는 피해자들, 가족과 터전을 동시에 잃은 이재민을 돕기 위해 일제히 튀르키예로 향했죠. 하지만 시리아의 상황은 달랐습니다. 구호단체의 도움이 제대로 닿지 못했는데요. 왜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지원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걸까요?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를 통해 심각한 인도적 위기에 직면한 시리아의 상황을 살펴봤습니다. 글 배동미(씨네21 기자)
“와드의 카메라에 포착된 알레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와 시멘트 먼지로 뒤덮이면서 회색빛 도시로 변해갑니다.”
- 사진 제공 엣나인필름
시리아 내전의 참상을 카메라에 담다
지진이 일어난 시리아 북서부는 내전 당시 독재자에게 반대해온 야권지역이라 구호단체의 도움이 제대로 닿질 못했습니다. 지진 발생 전에도 국제사회가 이곳을 돕기 위해선 튀르키예와 시리아 사이에 난 단 하나의 통로인 밥 알하와(Bab Al Hawa)를 통해야만 할 정도로, 시리아 정부의 통제가 엄격했던 곳입니다. 오랜 내전으로 굴착기와 같은 중장비가 부족한 시리아 북서부에서 이 같은 큰 지진이 일어나자 시민들이 직접 나서 망치로 시멘트를 깨고 맨손으로 건물 잔해를 걷어내면서 생존자를 구해야만 했습니다.
라타키아, 이들리브, 그리고 알레포. 이번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은 시리아 북서부 지역의 이름입니다. 낯선 이름들일 수 있지만,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사마에게>의 배경이 바로 알레포이기 때문입니다. <사마에게>는 알레포 대학의 평범한 여대생이었던 ‘와드’가 정부군에 맞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감독이자 주인공인 와드는 내전 한가운데에서 사랑을 찾고 새 생명을 얻는데요.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딸 ‘사마’가 바로 그 사랑의 결실입니다. 엄마 와드는 딸에게 말하듯 나직한 목소리의 내레이션으로 시리아 내전의 참상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직접 들어 폐허가 된 알레포를 기록하죠. 시시때때로 폭탄이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기도, 카메라를 들기도 쉽지 않았으리라 예상되지만, 와드는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곳을 떠나지 않는 것도 일종의 저항”이었다고요.
와드의 남편이자 사마의 아빠인 ‘함자’는 알레포에 몇 명 남지 않은 의사입니다. 매일 같이 벌어지는 폭탄과 미사일 폭격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시민들을 치료하는 함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외에 시리아 상황을 알리는 역할도 도맡습니다. 그래서인지 다큐를 보는 내내 관객은 조마조마해집니다. 과연 사마 가족은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폭격의 표적이 되는 건 아닌가 하고요. 제네바 협약에 따르면 전쟁 중일지라도 병원만은 공격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되지만, 와드의 카메라에 담긴 실상을 보면 병원마저 정부군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함자의 병원이 폭격 대상이 되어 의료진과 환자 53명이 일순간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하죠. 우연히 살아남은 함자는 다시 병원을 열고 의료행위를 시작하지만 언제 또 다른 피해를 입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기나긴 내전과 지진… 멈추지 않는 시리아의 고통
지진이 일어난 2023년 시리아를 생각하다 2016년 알레포 전투가 담긴 <사마에게>를 다시 꺼내본 건, 그때와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와드의 카메라에 담긴 2016년 시리아는 무너진 건물 아래 깔린 가족과 이웃을 시민들이 맨손으로 구해야만 하는 비극적인 곳이었습니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자신의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의 집결지였던 알레포에 폭격을 가하면서 ‘피의 쟁탈전’을 벌였는데, 와드의 카메라에 포착된 알레포는 시간이 흐를수록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와 시멘트 먼지로 뒤덮이면서 회색빛 도시로 변해갑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유서 깊은 알레포는 그렇게 취약해져갔습니다. 아사드 정부는 많은 피를 흘린 끝에 이곳을 손에 넣긴 했으나, 최근까지도 도시를 재건하지 못해 2022년 말 내전으로 위험해진 건물 1,500채를 철거하겠다고 발표했을 정도입니다. 길어진 내전으로 알레포에는 충분한 인프라가 발달하지 못하고, 그렇지 않아도 안전과 거리가 멀었던 이곳에 지진이란 재해가 다시 급습한 것입니다.
사마 가족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사드 정권이 ‘피의 승리’를 거두자마자 사마 가족은 쫓겨나다시피 알레포를 떠나야만 했고, 영화에 다 담기진 않았으나 튀르키예에서 1년을 보낸 뒤 영국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마 가족의 저항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와드는 시리아 정부를 향해 제네바 협약에 따라 병원 시설에 대한 폭격을 멈출 것을 요구하는 ‘액션 포 사마(Action for Sama)’ 캠페인을 계속 벌이고 있습니다. 전쟁 중일지라도 병원은, 의료진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약속과 규칙들이 시리아에서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전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공군과 공습이 없는 깨끗한 하늘, 태양과 구름이 떠 있고 새가 지저귀는 보통의 하늘을 염원하며 와드는 전쟁 중 태어난 딸의 이름을 사마라고 지었습니다. 사마는 시리아어로 ‘하늘’이란 뜻입니다. 하지만 다큐 속 사마는 태어나 경험한 것이라곤 전쟁뿐이어서, 성인이 들어도 깜짝깜짝 놀랄만한 폭탄 소리에도 익숙한 듯 울지 않습니다. 그런 사마는 가족과 함께 알레포를 떠났지만, 사마와 동시대에 태어나 비행기 굉음과 폭탄 소리에 익숙해졌을 많은 아이들은 아직 알레포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전이 지나간 바로 그 자리에서 지진을 겪어야 했던 아이들과 모든 생명에게 평화가 깃들길 바랍니다. 그들이 더 이상 폭탄에도 지진에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고, 그들의 보금자리에서 휴식하고 또 배우고, 안전하게 잠들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
위기가정 지원신청 및 후원하기 대한적십자사는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위기가정을 상시 발굴하여 생계, 주거, 의료, 교육 분야의 긴급지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위기가정 지원 신청하기우리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지금 참여해 주세요. 후원 신청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