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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소득 불평등 문제에 대한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일부 진보 성향 학자들을 넘어서 자본주의의 첨병으로도 불렸던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OECD) 같은 국제 기구에서도 핵심 연구 주제로 등장했다. 심지어 세계 부호들의 모임으로 불리는 ‘다보스 포럼’에서도 불평등 담론이 터져 나왔다. 세계 사회가 이 문제를 이토록 우려하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Writer_ 김경락 (한겨레 경제부 기자)불평등은 시장 경제의 근간을 위협한다
금융위기 이전에 불평등은 자본주의 경제 존속을 위해 불가피한 부산물로 취급하거나 현 경제 체제를 더 잘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유라는 인식이 많았다. 시장 경제 발전은 자유로운 경쟁을 토대로 하고, 불평등은 이 경쟁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각 경제주체들이 좀더 열심히 뛰게 하는 동력으로 바라봤다. 시장 경제 체제의 수호자들이 불평등 담론에 적극 뛰어든 배경에는 불평등 심화가 외려 시장 경제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자리 잡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쏟아져 나온 표현인 ‘지속가능한 발전’, ‘포용적 성장’ 등은 모두 불평등을 줄여야 보다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시장 경제 발전이 가능하다는 공감대를 밑바탕에 깔고 있는 성장 전략이다.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앨런 크루거 미 프리스턴대 교수가 2012년에 소개한 ‘위대한 개츠비 곡선(Great Gatsby Curve)’은 고착화되는 불평등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매우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여러 국가의 소득불평등도와 세대 간 이동성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는 이 곡선은, 소득불평등 수준이 높을수록 세대 간 이동성도 낮아진다고 보고한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한 계층에 머물 확률이 높고, 부자는 계속 부자로 머물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소득이 대물림되는 사회
부모의 소득수준이 자신의 소득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매개물은 뭘까? 많은 연구들은 ‘교육’으로 꼽는다.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교육에 영향을 미치고, 자녀가 받은 교육수준이 그의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로를 이야기한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이를 실증하는 연구는 국내에선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제로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교육에, 나아가 그 교육수준이 소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따져보기 위해서는 한 사람 혹은 집단의 생애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가 있어야 하지만, 짧은 역사 탓에 그런 자료가 우리 사회에 축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최근 들어서야 이런 답답한 상황에 변화가 시작됐다.
한국교육고용패널(KEEP)은 2004년에 처음 구축됐다. 18년의 데이터가 축적된 것이다. 이 데이터 덕분에 2004년 당시 중·고등학생이 어떤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며 어떤 상급 학교로 진행했으며 현재는 얼마나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됐다.
최필선(건국대)·민인식(경희대) 교수가 쓴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세대 간 이동성과 기회불균등에 미치는 영향> 논문은 이 데이터를 활용한 대표 연구물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논문은 일반인들의 상식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고 보고한다.
부모의 교육과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4년제 대학진학률이 높았으며, 자녀의 수능성적 1~2등급 비율이 높았다. 부모의 학력이 높고 소득이 많으면 자녀가 상위권 대학에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2004년 당시 부모(보호자)의 최종 학력이 고졸인 중학교 3학년 학생 중 26.1%만 4년제 대학에 진학했으나, 부모의 최종학력이 전문대졸 이상인 중학생은 78.5%나 4년제 대학에 진학했다. 또 2004년 당시 부모의 소득이 하위 20%에 속한 가정의 중학생 중 30.4%가 4년제 대학에 진학을 한 반면, 부모의 소득이 상위 20%에 속한 가정의 중학생 중 70% 가까이가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부모의 소득, 교육수준과 자녀의 학력 사이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존재하는 셈이다.능력과 실력에 따른 걸맞은 보상의 중요성
2~3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등장한 표현 중 하나는 흙수저, 금수저론이었다. 흙수저로 태어나면 아무리 안간힘을 쓰더라도 흙수저로 산다는 스토리다. 인구구조 자체가 고령화 되면서 청년들의 취업난이 쉽게 해소되지 않는 경제 상황이나 때마침 터진 금수저들의 비위 행위가 드러나면서 이런 인식은 강하게 퍼져나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시장 경제의 옹호자들마저 이런 불평등이 고착화된 현 상황에 우려를 드러내는 이유는 뭘까.
시장 경제는 다름 아니라 경쟁을 주요한 가치로 본다. 여기에는 능력과 실력에 따라 경쟁 과정을 거쳐 그에 걸맞은 보상이 주어지는 구조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어느 기관보다 소득불평등의 문제와 해법을 다룬 연구물을 많이 쏟아낸 국제통화기금은 이렇게 주장한다.
“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득불평등은 현 체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한 여러 해법 중 놓칠 수 없는 하나는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공정하게 교육을 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인적 자본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 기획+ Colum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