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RC 국제적십자위원회 (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ICRC와 파키스탄적신월사는 서북쪽 국경지역 스와비에 캠프를 설치했다. 무력충돌을 피해 그곳으로 온 3만5천 명의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서이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현재 2백만 명에 달하는 실향민에 비해 이 캠프에 수용된 사람들은 실향민들의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전체적인 상황을 알려주기에 충분한 듯 하다.

저 멀리 가지런히 늘어선 텐트들이 뜨거운 태양 볕 아래 빛을 발하고 있다. 해를 잠시 가려줄 구름 한점 조차 없다. 스와비 외곽의 대지는 메말라 먼지가 이는 황량한 모습이지만, 시원하고 숲이 우거진 북서부의 고향을 떠나 이곳으로 피난 온 사람들에게 캠프는 곧 희망을 뜻한다.

그곳에서 만난 하미드, 자키아, 일리야스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적신월과 적십자 표시를 본 순간 이제 도움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전에도 그 표시들을 봤지만, 그 땐 아무런 의미도 몰랐거든요."

어떤 이들에게 실향은 자녀를 잃어버린 아픔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며 일리야스의 눈이 금새 어두워졌다.

"고향 마을을 떠나 스와비로 향하던 중, 한 반쯤 왔을까, 제 아내가 한 밤중에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더군요. 딸 아이가 온데간데 없더라구요. 우리가 떠날 때 사방이 혼란스럽고 무척 어두웠어요. 총격전이 한창이었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죠. 전 가족 모두를 최대한 빨리 트럭에다 실었거든요," 그가 변명하듯 말했다. "트럭 기사 아잠이 비명 소리를 듣고 놀라서 달려왔어요. '폭탄이에요?' 하고 그가 묻더군요. 우리는, '아뇨. 우리 5살 난 아이가 보이질 않아요'라고 답했죠. '혹시 여자 아이인가요?'하고 아잠이 묻더라구요. 그러면서 '앞 자리 바닥에 한 아이가 잠 들어 있긴 한데 혹시 그 아이가 아닌지?' 하더군요. 전 바로 트럭에서 뛰어내려 확인했더니, 거기에 우리 딸 후마이라가 있더라구요."

"아잠은 이제 저에겐 형제와도 같아요," 일리야스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생명을 구해줬거든요.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운이 좋지 못했어요. 아직 아들을 못 찾고 있어요." 말을 이어가던 일리야스의 눈에는 이내 눈물이 글썽거렸다. "신의 뜻이겠죠. 우리가 후마이라를 트럭 앞 좌석에서 찾지 못했더라면, 다른 방법으로 찾을 수 있었을 거에요. 전 ICRC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가며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아주려 애쓰는 모습을 봤어요. 정말 좋은 일이에요. 아잠에게도 ICRC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이야기하려구요."

아잠은 바로 그렇게 했고 실향민(IDP) 캠프 내 설치된 ICRC 사무소로 와서 연락처를 등록했다. ICRC 사무소는 전시 및 전후 수천 명의 이산가족들의 재결합을 위해 일하고 있다. 무력충돌로 헤어진 가족들은 반드시 빠른 시일 내 재결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인도법이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다행히도 캠프는 상실의 슬픔만 존재하는 곳은 아니다. 그곳에서는 새롭게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임신 9개월째인 자키아는 오직 출산을 위해 샤 만수르 캠프로 왔다. 할아버지 사이드 와히드는 조심스럽게 새로 태어난 손자 사힐을 안았다. "이 아이 이름은 바닷가라는 뜻이에요," 자키아가 말했다. 행복한 순간이지만 완전하지는 않다. 자키아의 남편은 고향에 남아 이곳에 오지 않았다. "그 사람은 농작물들을 돌봐야 했어요. 그러지 않으면 우린 전혀 수입이 없어요. 근데 그 때부터 소식을 듣지 못했죠. 적십자가 우리를 도와줄 거라 믿고 있어요."

눈물이 가득하던 자키아의 눈에 갑자기 웃음이 흘러 넘친다. 여동생이 자키아의 세 살된 아들 하산을 번쩍 들어올려 목욕을 시키는 모습을 보고서다. 하산은 사촌과 진흙 속에서 씨름을 하다 온 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깨끗한 물과 위생 설비를 제공하는 것은 적십자적신월 캠프의 오랜 목표 중 하나다. 깨끗한 물과 위생 설비는 질병 예방을 위해 필수적이다. ICRC 사무소는 매우 주의를 기울여 수돗가를 유지보수하고 있는데 어린 하산도 동의할 만큼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산은 수돗가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온몸에 맞으며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을 주지 않는다. 자키아의 여동생이 하산을 씻기며 쩔쩔매자 캠프의 다른 거주자들이 깔깔대고 웃는다. "이리와, 점심 먹고 나서 사탕 줄게." 자키아의 여동생은 "애가 너무 더워서 그런지 아무것도 먹질 않아요. 그래서 수돗가에서 노는 걸 좋아하죠."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도 수돗가에서 아이들을 떼내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어서 오렴. 안 그러면 아빠한테 전화해서 다 이를 거야." 협박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와 표정과는 다르게 아이 아빠를 다시 볼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

상실의 메아리는 캠프 전체에 깊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동시에 고통을 이겨내려는 인내심도 엿보인다. "전 큰 아이들을 공립하교에 보냈어요." 자키아가 말했다. "전 아이들이 게을러져 배운 걸 다 잊어버리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웃어 보였다. "아이들이 어떤지 잘 아시잖아요." 학교는 캠프 위원회가 마련한 하나의 프로젝트다. 그곳엔 모든 종류의 위원회가 존재한다. 위생, 위기 관리, 식량, 규율 관리 등 사뭇 다양하다.

"적십자는 공용 부엌을 짓고 있어요. 직접 요리를 해먹을 수 있도록 말이죠.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자키아가 말했다. "지금까지 캠프에서 제공한 음식은 그다지 맛있지 않았어요. 이제 재료를 받아서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자키아는 위원회 위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저 분의 남편은 그저께 도둑을 직접 잡았어요. 그는 규율 위원회에 몸 담고 있죠. 여기서 안전함을 느끼는 건 매우 중요해요. 제 생각에 우리는 함께 공동체를 재건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방인들이 이웃이 된 것이다.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단지 가족을 잃었다는 상실감뿐인데도 말이다.

하미드가 회상했다. "아버지가 총에 맞았을 때, 전 우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아버지는 바닥에 쓰러지셨죠. 제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돌아가셨어요. 이제 제가 가장입니다. 어머니, 동생들을 돌봐야 해요."

"형제가 몇 명이니? 그리고 몇 살이야?"하고 하미드에게 물었다. "열이요."

"형제 말이니? 아니면 나이가?"

"둘 다요.."

(원문) http://www.icrc.org/eng/resources/documents/feature/pakistan-feature-110609.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