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되어 돌아온 나의 조국, 대한민국

우리를 잊지 마세요

사할린 동포 이야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수많은 조선인이 러시아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되면서 시작됩니다. 이들은 벌목, 탄광에서 매일 12시간이 넘는 노동과 추위, 매질을 견디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는데요.

1945년, 광복이 되자 4만여 동포들은 조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코르사코프 항구로 모여들지만, 광복 후 혼란 상태에 있던 조국은 이들까지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토록 그리던 해방에도 불구하고 사할린 동포는 서서히 잊혀간 것입니다.

“혹은 굶어 죽고, 혹은 얼어 죽고,
혹은 미쳐 죽는 이들이 언덕을 메우건만 배는 오지 않아….”

위령탑 비석에 새겨진 글에는 동포들의 서럽고 애끓는 한이 가득 묻어납니다. 이들은 소련 국적을 취득하라는 회유를 거절하고, 결국 무국적자를 선택하는데요. 나라 없는 국민이 되어 사할린에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할린 동포의 첫 영주귀국은 1992년이 돼서야 이뤄졌습니다. 외무부와 대한적십자사가 주관한 영주귀국사업으로 현재까지 4,400여 명이 귀국한 뒤 전국 각지에 정착했습니다. 하지만 6,300여 명의 우리 동포는 아직 사할린에 남아있습니다.

여생은 고국 땅에서 보내는 게 ‘마지막 소망’

“늘그막에 더 이상 바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나는 조선 사람이니까 조선에 가서 살자는 그 마음밖에 없습니다.”

올해는 광복 7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3월, 영주귀국자 90명은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으로 막힌 하늘길 대신 뱃길로 꿈에 그리던 고향 땅을 밟았습니다. 언젠가는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긴 세월을 견뎌낸 이들입니다.

먼 길을 돌아 마침내 제자리로 왔지만, 오랜 시간 타지에서 살아온 만큼 조국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실제로 영주귀국자 대부분이 생활고에 놓여 있거나 지역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요. 서툰 한국말을 배우는 것부터 먹고 살아가는 것까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연로한 고령의 동포에게는 더욱 버거운 일입니다.

긴 시간 외면받은 사할린 동포를 위한 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들이 조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어려움 없이 보낼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보내주세요. 이제는 우리가 사할린 동포를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