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도 지금도, 언제나
‘We are here for you’

주상철RCY 전신인 JRC 활동부터 대한적십자사 부총재, 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회 명예위원장, RCY 명예단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적십자의 첫 시작은 어땠나요?

적십자와의 첫 만남은 중학교 3학년 때인 걸로 기억해요. 학교에 JRC(Junior Red Cross, 지금의 RCY)가 결성되면서 단장을 맡게 됐거든요. 그때가 6·25 전쟁 직후였는데, 소위 ‘잘사는’ 나라에서 가난한 대한민국을 위해 구호물자를 보내왔습니다. ‘우정의 선물상자’도 그중 하나였어요. JRC 단원으로서 크레용, 지우개, 연필 등이 담긴 우정의 선물상자를 나눠주는 일을 했는데, 그때 저도 고작 중학생이었으니 질 좋고 근사한 학용품이 얼마나 갖고 싶었겠어요. 적십자 앰뷸런스에 선물상자를 가득 싣고 떠났다가 다 나눠주고 돌아오는 길이면 섭섭함과 동시에 마치 내 것을 모두 내어준 것 같은 뿌듯함을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유재아과거에 우정의 선물상자를 받았던 우리가 이제는 선물상자를 보내는 나라가 되었는데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우정의 선물상자를 나눠줄 때면 서로 먼저 달라며 달려드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참았던 울분이 터지기도 했어요. ‘내가 어쩌다 이렇게 가난한 나라에 태어나서 이런 모습을 봐야 하나?’ 싶었던 거죠. 가난과 전쟁의 상처로 참담했던 우리가 이제는 다른 나라를 도울 수 있을 만큼 성장했으니, 참 기적 같은 일이에요. 여러분은 그 시절을 잘 모르겠지만,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많은 것을 누리는 오늘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이하연옛날의 RCY(JRC)는 지금과 어떻게 달랐나요?

그때는 JRC가 유일한 학생 활동이었습니다. 단복이란 것도 없었어요. 교복도 입기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요. 팔뚝에 완장, 가슴에 붉은 적십자 표장을 단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웠던 시절이었죠.

여러분은 RCY 활동을 통해 응급처치법을 모두 익혔겠지만,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급급했던 그때는 응급처치법, 재난구호훈련 등을 배울 여유도 없었어요. 이것과 관련해서 잊지 못할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1965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예요. 미국행 비행기에 안내방송이 흘러나왔습니다. 프로펠러 한쪽에 과열로 인한 불이 났다고. ‘여기서 죽나 보다’ 하며 벌벌 떨고 있는데 “기내에 의료진과 적십자 출신은 앞으로 모여주세요”라는 방송이 나왔어요. 재난구호훈련, 응급처치법을 배우는 적십자 요원은 재난 및 응급상황에서 도움을 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적십자 출신임에도 응급처치법을 배운적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순간 추락하는 비행기에서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고, 그저 죽을까봐 전전긍긍했던 내 모습이 너무 창피한 거예요. 그 부끄러움은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어요.

이하연외국에서 오랜 시간 공부도 하셨고, 부군이신 한승수 전 국무총리님께서 UN총회 의장으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민간 외교관으로서 활약하셨는데요. 해외에서 경험한 적십자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한승수 전 국무총리께서 2001년 유엔총회 의장을 맡고 계실 때였죠. 적십자는 유엔총회에 옵서버(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하는데 특별세션에서 적십자 외 국제 NGO 등 여러 단체가 각기 활동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연설을 합니다. 이때 발언 기회를 잡는 것과 연설 순서가 정말 중요한데요. 적십자 조직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계셨던 한승수 의장께서 적십자를 NGO 단체로 대우하지 않고, 국제적십자 활동을 존경하는 의미로 가장 먼저 발언할 수 있도록 특별히 배려해주셨어요. 이를 통해 국제적십자의 위상을 높이고 지위를 탄탄하게 다지는 데 큰 몫을 했지요. 또 하나 미국 유학 시절, 사회복지전공 실습을 위해 상담 기관에서 근무했을 때였습니다. 가난과 학대 등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해결 방안을 찾아주는 일을 했는데요. 어느 날, 한 남성이 “정부로부터 매달 생계비를 지원받아 생활하는데 버스에서 그 돈을 도둑맞았다”며 도움을 요청해왔어요. 당장 먹고살 방도가 없으니, 절박해진 마음에 이곳을 찾은 거죠. 그때 머릿속에 단어 하나가 스쳐 지나갔어요. ‘적십자!’. RCY 활동을 하면서 적십자에 긴급구호기금이 있다는 걸 알았던 저는, 바로 적십자에 전화를 걸어 그분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다행히 적십자에서 흔쾌히 지원을 약속했답니다. 적십자는 고통받는 이웃에게 따뜻한 희망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니까요.

주상철제15차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 서울 개최를 위해 적극적으로 외교활동을 벌이며 노력을 기울이셨는데요. 유치 배경에 대한 소회가 궁금합니다.

대한적십자사가 창립 100주년을 맞은 2005년, 서울에서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를 열자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서울에서 연맹 총회를 개최할만한 당위성은 충분했어요.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온 대한적십자사 100년의 활동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비전을 찾아보자는 거였으니까요. 당시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였던 저는 원조국 적십자사 정기연례회의(Donor Forum)에 대한적십자사 대표로 참석해 한국 유치를 호소하는 연설을 했습니다. 또 2003년 11월 제14차 연맹 총회 개최 전까지 각국 적십자사 대표를 만나 서울에서 총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지지를 당부했어요. 이러한 우리의 노력이 공감대를 얻으면서 2005년 제15차 국제적십자사연맹 총회는 한국에서 열렸고 이는 대한적십자사 역사 이래 가장 큰 자부심을 느낄만한 성과로 남았습니다. 그 일에 제가 힘을 보탤 수 있어서 감회가 깊었죠.

이하연가슴에 품고 있는 좌우명이나 RCY 단원들과 공유하고 싶은 좋은 글귀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내 곁에 어떤 ‘사람’이 있는가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건강하고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게 저의 좌우명이자 목표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요. 바로 ‘일할 수 있는 기쁨, 사랑할 수 있는 행복, 노래할 수 있는 마음의 평화’입니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우리 삶은 진정한 평화를 찾을 수 있고, 평화 속에서 성공적인 인간관계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재은RCY 단원이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나눔과 봉사는 ‘나부터 즐거운 일’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누군가를 돕는 일이 남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오만해질 수 있거든요. ‘내가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얻었구나’라는 생각으로 평등한 관계 속에서 나눔과 봉사가 이뤄져야 해요. ‘내가 당신을 돕는다’가 아닌 ‘우리 함께 한다’라는 마음으로 말이죠. 봉사할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아요. 선택된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감사한 은총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유재아올해 RCY가 창립 7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RCY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나라는 갚을 게 참 많은 나라입니다. 가난하고 여유가 없던 시절, 다른 나라로부터 많은 신세를 졌으니까요.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이 나라를 지킨 우방국의 젊은이들이 흘린 피를 생각하면 지금도 목이 메어요. 또 가난하고 굶주린 우리나라의 청소년을 위해 세계 곳곳에서 구호품도 보내줬잖아요? 우리가 받은 사랑을 이제는 베풀고 주는 봉사로써 갚아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재은부총재님께서는 앞으로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저는 그저 여러분들이 잘 자라는 걸 보고 싶을 뿐이에요. 여러분 선배들이 걸어왔던 길을 따라 ‘적십자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며, 저마다의 색으로 ‘적십자인답게’ 멋지게 살아내는 모습 말이에요. 여러분들이 있어서 앞으로의 우리나라가, 대한적십자사가 더욱 기대된답니다.

왼쪽부터 주상철 회원(충남본부 대학협의회 회장, 청운대학교), 유재아 단원(서울본부 서울의료보건고등학교 RCY 부단장), 이하연 단원(인천본부 인천석천초등학교 RCY 단장), 최재은 단원(서울본부 서울의료보건고등학교 RCY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