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3년 7월, 전주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상경한 창업가는 방배동의 한 건물 지하에 자신의 첫 사무실 간판을 내걸었다. 당시 수입에 의존하던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의 국산화를 목표로 회사를 차린 창업가는 필요한 자재를 구하기 위해 시장에서 발품을 팔았고, 200도 이상 초고온으로 달궈진 기계를 작동하는 작업을 도맡았다. 시행착오 끝에 제품을 완성한 후에는 세련된 상품 안내서(카탈로그) 대신 기계 곳곳을 한 장 한 장 촬영·인화해 만든 ‘수제 사진집’을 들고 영업에 나섰다.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의 제조 및 판매에 매진하며 회사가 성장하자 2000년 본사와 공장을 군포시로 확대 이전했고, 부단한 연구 개발로 자동화 산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하에서 시작한 작은 회사가 국내와 일본·중국·말레이시아·인도에 대리점을 내기까지, 창업가는 사회 공헌 활동도 꾸준히 펼쳐 왔다. 각종 장학금과 물품 기부를 25년 이상 지속했고, 대한적십자사의 고액 기부자 모임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RCHC)과 고액 기부 법인단체 모임 ‘레드크로스 아너스기업’(RCSV)에 가입했다. 현재 여든이 넘은 그의 장성한 세 아들 중 장남·차남 역시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 가입에 동참하며 지역사회에 ‘진정한 부자’의 의미를 전하고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팔복시스템 창업자 장대우 대표이사(83)는 25일 중부일보와 만나 자신의 사회 공헌 철학이 마태복음 13장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이사는 “‘좋은 땅에 씨앗을 뿌린 자는 30배, 60배, 100배로 결실을 거둔다’는 마태복음 말씀대로, 좋은 곳에 씨앗을 뿌려 더 많은 결실을 거두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실천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단, “개인의 보람이나 사회적 명예를 생각하고 기부를 한다면 좋은 곳에 씨앗을 뿌리는 게 아니다. 그러면 결실이 없다”고 짚었다.

◇자동화 공정 선도 ‘핫멜트’
㈜팔복시스템의 대표 제품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에서 ‘핫멜트’(hot-melt)는 물이나 용제를 사용하지 않고 실온에서 100% 고체인 불휘발성·불연성·열가소성 수지로 만든 접착제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는 제품 겉면에 스프레이 등 형태로 ‘핫멜트’ 접착제를 쏴, 포장 공정을 자동화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다.
장 대표이사는 1980년대 한 식품회사에서 미국산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의 수입·판매 일을 하며 기계 국산화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당시 고가의 기계를 외국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는 데다 고장 시 부품 수급마저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는 1985년부터 약 8년간 기술 개발에 전념해 1993년 7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약 132㎡(약 40평) 규모 지하 사무실에서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를 내세운 팔복시스템을 설립했다. 그러나 실제 산업 현장에 기계를 판매·보급하기까지는 갖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장 대표이사는 “80년대 박스에 테이프(접착제)를 붙이는 작업자의 인건비가 월 7만 원 정도였는데 기계 판매 가격은 500만 원 정도니, 현실적으로 영업이 어려웠던 상황”이라며 “인건비가 인상되고 난 후에야 대기업이 기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금성사(현 LG전자)의 냉장고 설비 분야에 첫 영업이 되고, 담뱃갑·휴지곽·제과·음료 등을 포장하는 데 기계가 보급됐다”고 말했다.
또 “기계 온도를 220도까지 올려서 써야 하는데, 그 온도를 견딜 자재가 당시 국내에 없었다”며 “미군 부대에서 고철로 나온 물건을 시장에서 구했고, 호스가 열을 견디도록 유리섬유로 감싸는 작업을 2000년대 단열 호스가 나오기 전까지 직접 했다. 팔이 따갑고도 뜨거운, 참 고역스러운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노력 끝에 장 대표이사는 산업 현장에서 ‘국내산’ 핫멜트 자동분사 기계에 대한 긍정 반응을 이끌어냈다. 현재 ㈜팔복시스템의 거래처는 6천여 곳에 달하며, 기계는 주로 현대·기아·테슬라 자동차에 손잡이 등을 부착하는 제조 과정에 쓰이고 있다.

◇유년 어려움 딛고 장학지원
회사의 몸집이 커지자 장 대표이사는 2000년도 본사와 공장을 군포시 당정동으로 이전, 사회 공헌 활동의 기반도 본격 구축했다. 특히 그는 학업에 전념하기 어려웠던 유년 시절 설움을 잊지 않고 다양한 장학사업을 추진해 지역 인재의 건강한 성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먼저 회사 자체적으로 직원 자녀의 중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비를 지원하는 장학제도를 운영 중인데, 현재 총 3억742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2000년대 들어 최근까지 전주동중학교에 8천500만 원, 서울대학교병원에 3억4천만 원 등의 기부금을 쾌척했고, 지난 2023년 9월부터는 군포사랑장학회에 연간 1천만 원씩 후원하고 있다.
장 대표이사는 “어려서부터 온갖 고생을 겪으며 성장했다. 수업료를 제때 납부하지 못해 등교 대신 ‘중간치기’(수업을 빼먹는 일)하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다”며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이기에 도움받을 곳도 없었고, 오로지 혼자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때의 고충이 지금 어려운 이웃을 돕게 된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또 그는 “돈으로 기부 대신 다른 여러 곳에 사용할 수 있다는 명목을 생각하면 절대 기부를 실천할 수 없다. 기부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그 즉시 실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부 대물림, 경영도 ‘바르게’
장 대표이사의 세 아들 중 장남 장상귀 변호사와 차남 장상안 ㈜팔복시스템 전무이사는 최근 아버지를 본받아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RCHC)에 각각 가입했다.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은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거나 약정한 대한적십자사의 고액 기부자 모임이다. 내년에는 막내아들까지 가입할 예정으로, 아버지에 삼형제 모두가 고액 기부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장 대표이사는 “국가 재난 시 봉사에 나서거나 동절기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보내는 적십자 활동에 도움이 되고자 회사·개인 자격으로 아너스클럽에 가입했다. 자녀들도 내 뜻을 이해하고 이어받아 기부에 함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부 실천과 더불어 ‘정년 보장’ 또한 장 대표이사 경영의 중요한 지향점이다. 그는 “회사 경영은 나 혼자만 잘 한다고 되지 않는다. 직원들과 혼연일체로 뜻을 합칠 때 바르게 운영된다고 생각한다”며 “경영 우선순위는 직원들이 가정에서 평온하고, 화목하고, 사랑스럽게 지낼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일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 문제로 인한 근심이나 고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 대표이사는 “우리 회사에 한 번 입사하면 다른 회사로 이직하지 않고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는 제도를 계속 지켜나갈 것”이라면서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회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 또 내가 회사를 경영하는 그날까지 기부를 지속 실천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