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이네 가족의 봄날을 기다리며(kbc 희망풍차 휴먼다큐 나눔 64화)

부엌에서 각자 맡은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시어머니와 며느리. 아직은 주방 공유가 어색한 고부 사이라는데요. 불과 4개월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두 사람이 함께 지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신예심) “이게 더덕이에요.”

(촬영감독) “어디서 나셨어요?”

(신예심) “우리 밭에서 캤어요.”

(촬영감독) “어떤 농사 지으세요?”

(신예심) “벼농사하고 콩하고 식구들 먹을 고추 농사하고 있습니다.”

가족들 식사 준비로 바쁜 엄마. 요즘 시어머니의 요리 비법을 전수받고 있는 중입니다.

(쩐티키우짱) “된장국하고 낙지무침이에요”

(촬영감독) “한국 음식을 잘하시나 봐요?”

(쩐티키우짱) “아니에요. 잘 몰라서 시어머니한테 배우고 있어요.”

아직은 어색한 고부 사이 옆에서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민이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는데요. 서로에게 친구 같은 부자 사이라고 합니다.

(강정일) “더덕 캐다가 호미 긴 날이 때려서 긁혔어.”

(민) “아이고 아빠 아프겠다.”

(강정일) “피멍까지 들 줄은 몰랐는데….”

(민) “아하, 피멍.”

(강정일) “이게 피멍이야. 안에 피가 고여서 멍든거.”

얼마 전 밭일을 하다 얼굴에 상처를 입은 아빠. 사실 이렇게 네 식구가 함께 살게된 건 지난 연말부터입니다.

(강정일) “잘 되어서 (어머니 집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어머니 눈치 보면서 다른 곳에 방을 얻어서 나가기도 그래서 어머니 집으로 들어온 거죠.”

그 날을 생각하면 속이 새까맣게 타 들어가는 아빠. 민이네 가족에겐 어떤 사연이 있는걸까요?

따뜻한 봄볕이 내리쬐는 강진 들녘. 이른 아침 민이네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늘도 가장 먼저 일어나 출근 준비를 서두르는 엄마. 꿈나라 여행 중인 민이에겐 너무 이른 시간인데요.

(쩐티키우짱) “엄마 나 일 다녀올게요. 민이 아침밥 챙겨주세요.”

(신예심) “지금?”

(쩐티키우짱) “아니 이따 7시 30분에요.”

(쩐티키우짱) “엄마, 나 갈게요.”

시어머니에게 민이를 부탁하고 집을 나서는 엄마. 어린 아들을 곁에서 챙겨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촬영감독) “아침 일찍부터 어디 가시는 거예요?”

(쩐티키우짱) “일하러 가요.”

(촬영감독) “멀리 가세요?”

(쩐티키우짱) “네. 직장이 멀어요.”

(촬영감독) “무슨 일 하세요?”

(쩐티키우짱) “환경미화, 청소일 해요.”

한국에 온 지 이제 10년. 몸이 아픈 남편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엄마는 집 안의 가장이 됐는데요. 힘들어도 아픈 남편과 민이를 생각하면 일을 쉴 수 없습니다. 엄마에게 가족은 유일한 버팀목이자 살아가는 이유이니까요.

(강정일) “일어나 강민, 일어났어?”

엄마가 직장에 출근하는 동안 아빠는 민이를 깨웁니다.

(강정일) “얼른 일어나.”

(강정일) “얼른 일어나서 씻어.”

직장에 나가 일하는 엄마를 대신해 민이를 챙기는건 아빠 몫이 됐는데요. 이제 살림에도 제법 익숙해졌습니다.

어린 민이가 할머니집에서 지내면서 딱 하나 불편한게 바로 이 낡은 욕실이라는데요.

(촬영감독) “여기서 샤워하고 세수하는 거예요?”

(민) “네.”

(촬영감독) “불편하지는 않아요?”

(민) “보기에 좀 좋지 않고 약간 추워요.”

(촬영감독) “샤워는 어떻게 해요?”

(민) “난방기가 있어서 목욕 설정하고 따뜻한 물이 나오면 샤워해요.”

(촬영감독) “그래도 많이 추울 것 같은데요?”

(민) “많이 추워요.”

제대로 된 샤워 시설은 커녕 금이 가고 갈라진 벽 틈으로 쌩쌩 들어오는 찬 바람에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는데요. 그래도 지금은 적응이 돼서 후다닥 씻는 요령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제 겨우 12살. 민이에겐 곁에서 도와줄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한데요.

(강정일) “엄마가 옷 안 내놨어?”

(민) “새로 산 옷 입고 있어요.”

(강정일) “엄마가 매일 학교에 입고 갈 옷 내놓던데….”

(강정일) “또 모양 안 나게 입었어. 안에 옷을 벗고 입어야지.”

(민) “알았어요.”

아침 일찍 출근하는 엄마를 대신해서 아빠는 민이의 등교 준비를 세심하게 챙깁니다.

(강정일) “양말을 짝짝으로 신었어?”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민이.

(강정일) “엄마가 양말을 어디에다 숨겨 놨다냐.”

아이 키우는 집에선 일상인 풍경이죠.

(강정일) “솔직히 남자라 살림이 어수선하죠.”

(강정일) “애 엄마가 (출근 전에 민이 옷을) 세트로 준비해놓고 가는데 어쩔 때 안해놓고 출근하면 그것 찾느라 아침마다 어수선하고 그래요.”

오늘도 한바탕 소동이 지나가고 평화로운 아침식사 시간. 민이가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면서 가장 좋은건 푸짐해진 밥상이라는데요. 다행히 원래 살던 집과 할머니 집이 같은 동네라 학교에 가는 것도 별 문제가 안 됩니다.

(민)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민) “아이 깜짝이야, 왜 따라왔어.”

밝고 쾌활한 성격의 민이. 달라진 환경에서도 씩씩하게 웃음을 잃지 않습니다.

(촬영감독) “지금 학교에 가는 거예요?”

(민) “네.”

(촬영감독) “학교까지 얼마나 걸려요?”

(민) “통학버스가 8시 20분쯤 오니까 학교에 도착하면 8시 40여분쯤 돼요.”

민이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에 가고 나면 아빠는 무릎수술을 한 할머니 대신 집안일과 밭일을 하는데요. 사실 아빠도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촬영감독) “허리가 많이 안 좋으신가봐요?”

(강정일) “고질병이죠.”

(촬영감독) “걸으실 때 허리에 손을 대고 걸으시네요?”

(강정일) “시골에서는 젊은 편인데도 이래요.”

불편한 몸으로 아빠가 향한 곳은 전에 살던 주택.

(강정일) “저기 봐요. 저 위에 숯검댕이가 지붕에 다 올라왔잖아요.”

단란했던 보금자리에 화마가 닥친건 작년 11월. 이웃집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민이네 집 지붕으로 옮겨붙었고 가족들은 간신히 몸만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데요. 화재로 무너져내린 집은 흉물처럼 변했습니다.

(촬영감독) “지붕 쪽만 다 타버렸네요?”

(강정일) “네. 옆집하고 붙어 있다 보니까 그렇게 돼버리더라고요.”

(강정일) “전체가 다 타버려서 철거를 해야 하는데 철거를 하려고 해도 갑갑해서…. 슬레이트 지붕만 철거하는데 오백만 원이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촬영감독) “철거하는 비용이요?”

(강정일) “네. 슬레이트 지붕만 철거하는 비용이요. 그럼 나머지도 폐기물로 해서 다 철거를 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뿐인 보금자리를 잃어버렸다는 슬픔도 잠시 화재의 원인이 된 이웃집 사정상 단 한 푼도 보상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아빠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쑥대밭이 된 집도 모자라 막대한 철거비용까지 마련해야 한다니. 이 모든게 아빠는 꿈만 같은데요.

갑작스런 화재는 가족들의 소중한 추억마저 잿더미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강정일) “베트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한국에 와서는 결혼식도 못 했어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고생만 한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아빠의 작은 꿈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렸는데요.

(강정일) “그래도 이 사진은 불에 안 타고 남았네요. 다른 사진은 다 불에 타버리고. (이것만) 아들 앨범에 넣어놨는데 아들 사진과 베트남에서 찍은 이 결혼사진밖에 없네요.”

화재 직후 옷가지도 챙기지 못하고 어머니 집으로 들어간 민이네. 어머니마저 없었다면 엄동설한에 세 식구가 어떻게 겨울을 보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요.

(강정일) “아들 색동옷이에요.”

소중한 보금자리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현실이 아빠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강정일) “솔직히 집 안에는 다 타버렸잖아요. 이 방에는 이 옷장 하나 멀쩡하고 나머지는 쓸 수 있는게 없어요. 장롱만 남았어요.”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서진 집. 화마는 민이네 가족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아 갔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아빠입니다.

(촬영감독) “당시 불이 난 지 어떻게 아셨어요?”

(강정일) “아들이 아침 7시에 일어나요. 아이 엄마가 출근하면서 아들을 깨우거든요. 이제 다 컸다고 아침에 일어나면 자기 혼자서 씻는데, 그런데 갑자기 이 방에서는 연기가 안 나는데 ‘아빠, 아빠!’ 부르면서 부엌에서 연기가 난다고 그랬어요. 그래서 가보니까 이미 불꽃이 솟아오르면서 불이 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불이 난 줄 알았죠. 그 전까지는 옆집에서 불이 난 지 몰랐어요. 지붕을 타고 불이 옮겨붙어서 모르겠더라고요.”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아찔하다는 아빠. 불길 속에서 가족 모두 무사히 살아나온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전소된 집을 철거하고 새 집을 지을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답답하고 속상하기만 합니다.

(유용상) “잘 계셨어요?”

화재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유용상 소방대원.

(강정일) “불에 탄 집을 보면 속상하니까 오기가 싫어져 버려요.”

(유용상) “저희들이 현장에 왔을 때 옆쪽으로 연소확대가 됐잖아요. 그 상황에서 이 집 쪽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강정일) “저도 이해를 해요. 집 구조상 옆집에 화재가 나면 이쪽으로 불이 옮겨붙게 되어있었잖아요.”

불길을 잡기 위해 소방대원들이 애를 썼지만 지붕이 이어진 주택 구조상 민이네 집이 전소되는 상황을 막을 수는 없었는데요. 새까맣게 타 버린 현장을 볼 때마다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뿐입니다.

(유용상) “그 당시 저희들이 출동했을 때 옆쪽 주택에서 (불이 났는데) 주택구조가 1주택 2가구 구조여서 저희들이 연소확대를 잡아보려고 했는데 천정을 같이 쓰다 보니까 이미 불이 천장 쪽으로 들어와 있는 상태고 집을 수리해서 쓴다는 것은 새로 집을 짓는 것보다 오히려 비용이 더 많이 들지 않을까요. 그런 부분들이 안타깝습니다.”

혹독한 겨울을 지나 봄이 됐지만 민이네 가족에겐 아직도 추운 겨울인데요. 지난 봄처럼 민이가 다시 마당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요. 아빠는 민이에게 다시 따뜻한 봄날을 선물해주고 싶습니다.

(촬영감독) “어디 가세요?”

(강정일) “배 바닥 좀 긁으려고요.”

세 식구의 가장이었던 아빠 정일씨는 그동안 고향을 지키면서 농사일부터 뱃일까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면서 열심히 살았습니다.

(촬영감독) “바닷일도 하시나 봐요?”

(강정일) “허리가 많이 아프다 보니까 배를 육지로 올려놨어요. 바다에 나가면 이틀 정도 일하고 일주일간 쉬다 보니까 솔직히 바다에 나가봤자 일을 제대로 못 하니까 배를 아예 육지로 올려놨어요. 다른 사람들은 바다에 나가서 고기를 잡는데….”

군 복무 중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협착증을 앓고 있는 아빠. 아픈 허리로 가족들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한 탓일까요. 몇 년 전부터는 심한 노동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증상이 악화됐고 이제는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허리 통증이 심해졌다고 하는데요. 수술도 생각했지만 완치가 어렵단 말에 생계 수단인 뱃일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촬영감독) “그동안 이 배로 뭐 잡으셨어요?”

(강정일) “주낙으로 낙지를 잡았어요. 밤에 바다를 나가다 보니까 주낙이 다른 것보다 계속 바닥을 보고 있어야 하니까 허리에 더 무리가 가는 거죠. 그래서 일을 못 하고 배를 그냥 육지에 올려놓고 있는 거예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민이가 친구들과 향한 곳은 지역아동센터입니다. 시골인 탓에 학원이 따로 없기도 하지만 생계를 위해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릴 적부터 민이는 이곳 센터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으면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놀이도 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왔습니다.

(김현) “민이가 센터를 다닌 지 5년 정도 되니까 민이네 상황을 잘 알 수밖에 없었고 다문화가정의 자녀다 보니까 특별히 더 신경써서 관찰을 하게 되거든요. 민이는 성격이 밝은 편이고 친구들한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해줘서 친구들이 굉장히 재밌어해요. 그래서 집에 가는 길에도 ‘민아 재밌는 얘기해 줘’ 하면 웃기는 이야기도 잘 하고 그래서 친구들도 많이 웃겨주고.”

활발하고 유쾌한 성격에 민이. 덕분에 큰 화재사건을 겪고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있답니다.

(김현) “요리하는 사람을 민이는 본인 자신이라고 썼네? 집에서 요리해?”

(민) “네. 라면같은 거나 달걀프라이 같은 건 직접 할 때가 있어요.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실 때.”

(김현) “그런 간단한 요리는 민이가 할 수 있구나.”

일찍 철이 든 걸까요. 힘든 상황에서도 씩씩하게 잘 자라준 민이가 기특하고 대견하기만 합니다.

그날 오후, 반가운 손님들이 민이네를 찾아왔습니다.

(이병국) “안녕하세요. 허리는 좀 괜찮으세요?”

(강정일) “네.”

(이병국) “밭에서 무랑 뽑으신 거예요?”

(강정일) “이제 밭을 갈아야 하니까.”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민이네 가족의 딱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군과 면사무소의 복지 담당 직원들인데요. 화재로 전소된 집의 철거비용 문제로 고민이 많은 아빠. 집과 살림살이를 모두 잃어버린 지금으로서는 500만원이라는 큰 돈을 구할 방법이 없는데요. 이런 어려운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군에서도 민이네의 신축 지원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병국) “작년 11월에 화재가 발생했는데 이웃집에서 발생한 화재였기 때문에 보상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라서 같은 마을에 계시는 모친댁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저희 신전면에서도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김경) “저희가 이번에 와서 보니까 상황이 굉장히 어렵네요. 군에서 어려운 분들을 도와드리는 프로그램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민관 프로그램들을 연계해서 잘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려운 형편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의지하며 행복을 키워가던 아빠, 엄마와 민이. 하지만 화마는 가족들의 하나뿐인 보금자리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민이가 앞으로도 웃음을 잃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과 정성을 전해주세요. 대한적십자사가 여러분과 함께 민이네 가족의 빛나는 내일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