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식구,방 한칸 가질 수 없는 가난 (kbc 희망풍차 휴먼다큐 나눔 53화)

전남 무안군 무안읍

(나레이션) 전남 황토밭이 펼쳐진 들녘

마을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논밭 사이에 홀로 덩그러니 서있는 집 한 채가 있습니다.

이곳은 오늘의 나눔의 주인공이 살고 있는데요.

바로 13살 예은이와 11살 예준이 남맵니다.

비록 좁디 좁은 방 한칸이 전부지만 예은이와 예준이, 엄마 아빠 네식구의 보금자리랍니다.

한창 투닥거릴 나이에 남매가 24시간 함께 붙어있을 수밖에 없으니 서로의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보인다는대요.

(예은) 엄마 예준이 코피 나. 코피 터졌어

(엄마) (엄마가) 안 본 사이에 또 코 팠어?

(예준) 코 밑에 아픈데

(엄마) 그래도 코피 닦아야지. 물티슈로 닦아야겠다.

(나레이션) 동생을 걱정하는 마음도 모르고 못본 척 넘어가주지 않은 누나가 때로는 얄밉습니다.

(엄마) 봐. 코가 다 헐었잖아.

(엄마 이은경) 비염 때문에... 예준이는 콧구멍이 작은데 코를 자꾸 파면 코피가 터지거든요. 혈관도 약하고. 그것 때문에 아빠한테 많이 혼나요. 잘 때 순식간에 코로 손이 가니까 아빠가 수시로 예준이 손을 때려요. 코를 못 파게... 아니면 손을 빨고 있던가

(예준) 엄마! 아빠가 나중에 사준다 했어

(엄마) 적당히 먹어라

(나레이션) 시끌벅적 조용할 날 없는 남매의 일상

(엄마) 예은아 뭐하려고?

(나레이션) 그런데 이때. 갑자기 돌발행동을 하는 예은이. 당황스럽기는 엄마도 마찬가진데요.

(엄마) 마스크를 해

(나레이션) 마당으로 나간 예은이가 어디론가 바삐 움직입니다.

(예은) 아 냄새

(나레이션) 대체 무슨일인가 했더니 개밥을 주러가는 길이였군요.

(예은) 가만히 있어

(나레이션) 예은이의 유일한 친구라는 흰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허. 천방지축이지만. 강아지를 챙기는 마음이 참 예쁘네요

(PD) 테이프로 코를 왜 막았어요?

(예은) 누렁이 똥 냄새 때문예요.

(나레이션) 오늘도 예은이 예준이 남매의 하루는 맑음입니다.

(엄마) 일어나 세수하자 딸램아

(나레이션) 엄마의 잔소리에 예은이의 심술이 엄한데로 불똥이 튑니다.

(예은) (아빠)일어나

(나레이션) 곤히 자고 있는 아빠와 예준이를 깨우는 예은이. 결국 누나의 성화에 예준이가 마지못해 일어나는데요. 밤새 건조해진 코에 또 손이 갑니다.

(엄마) 예준이 코 파지 말고

(예준) 코 안 파

(나레이션) 스스로 알아서 약 봉지를 찾아 약부터 챙겨먹는 예준이. 꽤 자연스러운 모습이 예준이에겐 익숙한 일상인거 같은데요.

(PD) 무슨 약을 먹은 거예요?

(예준) 정신과 약이요.

(PD) 정신과 약? 아침마다 먹는거야?

(예준) 네.

(나레이션) 원래는 창고였던 곳을 주거공간으로 쓰고 있는 탓에. 아이들이 지내기에 위험한 곳이 많습니다. 특히, 화장실은 어린 예준이에겐 가장 불편한 공간인데요. 씻는 둥 마는 둥. 고양이 세수 시전을 보이더니 민망한 듯 웃는 예준이. 따뜻한 물을 커녕 고장난 세면대에 욕실이라고 하기엔 민망한 정도로 시설이 열악하다 보니 불편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불평불만은 사치.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지금까지 무상으로 거주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이죠.

(PD) 외딴 곳에 지금 딱 한 채가 있네요.

(엄마) 저 밑에도 있는데요. 남편 지인을 통해서 건물 관리 차 여기서 지내게 됐는데 남편의 실수로 불이 나는 바람에 나가라고 해서...

(PD) 그럼 어떻게 해요?

(엄마) 집을 알아보고 있는데 집이 잘 나오지 않아서. 또 돈이 여유가 없어서 아파트는 못들어가고.

(나레이션) 또 다시 오갈데가 없어진 가족들. 이런 엄마 아빠의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예준이와 예은이는 아침부터 옥신각신입니다.

(예준) 하지마. 하지말라고.

(나레이션) 매일 아침 예준이 코에 약을 바르기 위한 한판 씨름이 벌어진다는대요. 엄마와 누나의 합동 공격에 예준이는 결국 오늘도 KO.

(예준) 코안에 들어간다고. 하지마.

(나레이션) 그러게 처음부터 얌전하게 약을 바르면 얼마나 좋을까요.

(엄마) 그러니까 코 파지 말라고 했잖아

(예준) 약을 코안까지 왜 넣어

(나레이션) 티격태격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남맵니다.

(나레이션) 등교 전 코로나 자가검사를 하는 예은이.

(예은) 코피 터졌어

(엄마) 괜찮아

(예은) 코피 났어

(엄마) 오바하지 말고 빨리해

(나레이션) 두근두근 결과를 기다리는 데요

(예은) 양성. 양성

(나레이션)학교에 가기 싫은 속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버렸네요. 결과가 실망스러운 것 같습니다.

(예은) 코피도 났는데 왜... 음성 나왔네.

(PD) 음성이 나와야지 왜 양성이 나오길 바라요?

(예은) 저는 엄마랑 같이 집에 있고 싶어서요.

(엄마) 금요일마다 자가진단 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하는데 (예은이가) 오버하는 거예요.

(나레이션) 누나를 애타게 기다리는 예준이. 급한 마음에 예은이도 일단 뛰고 봅니다

(예은) 같이가. 넘어진단 말이야. 잠깐만. 아 다리 아파. 여기 오르막길이라 힘들어.

(나레이션) 아이들이 이렇게 서두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집 앞에서 한참동안 예은이와 예준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택시 한 대. 외딴 곳에 사는 남매를 위해서 군과 학교에서 지원해준 통학용 택시입니다. 택시로 학교까지 대략 십여분정도. 버스도 다니지 않는 외진 곳이라 택시가 없었다면 남매의 등하굣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PD) 아이들 몇 살때부터 보신 거예요?

(고인수 택시기사) 한 3년 된 것 같아요.

(PD) 꽤 오래됐네요.

(택시기사) 네. 예은이는 성격이 밝아요. 주위에서 도움을 많이 줬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무안초등학교(무안군 무안읍)

(나레이션) 초등학교 3학년인 예준이는 같은 반 친구들보다 인지 기능이 낮고 주의력과 집중력이 약하다고 하는데요. 작년부터는 병원에서 ADHD 증후군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박미정 무안초등학교 특수교사) 예준이나 예은이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지적장애뿐만 아니라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ADHD도 있어요. 그래서 학생들과 교유관계에 있어서 사회적인 상호작용에 있어서 많이 어렵고요. 작년에 제가 가정방문을 갔는데 많이 놀랐어요. 넓은 논에 집 한 채만 덩그러니 있었거든요. 그 집도 상당히 사람이 살기에는 많이 열악한 환경이어서 아이들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랄 수 있는 바람으로 지원이 잘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자막) 무안북중학교(무안군 청계면)

(나레이션) 올해에 중학교에 진학한 누나 예은이 역시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인 ADHD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예은이 경우에는 동생 예준이보다 상태가 좀 더 심각하다고 하는데요.

(무안북중학교 특수교사) 글씨가 너무 크지? 항상 네모 칸 안에 글씨를 쓴다고 생각하고 천천히 써. 글씨가 이거하고 같아요 달라요?

(예은) 달라요.

(나레이션) 약을 먹지 않으면 증상이 더 악화된다고 합니다.

(최병하 무안북중학교 특수교사) 예은이의 학습 수준은 초등학교 1,2학년 수준으로 예은이가 지적장애 중증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ADHD를 진단받았어요. 그렇다 보니까 교우관계에서 친구들과 언쟁이나 싸움이 많이 발생하고요. 예은이는 약을 먹는 것과 먹지 않는 것과 차이가 굉장히 크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약이 없어서 약을 못 먹고 학교에 온 경우가 있었는데 예은이도 굉장히 힘들고 친구들도 굉장히 힘들어 했습니다.

(최병하 교사) 이제 쓰기 했으니까 읽기도 한번 해보자. 예은이 이책 읽어본 적 있어요? 강아지똥.

(예은) 네.

(최병하 교사) 언제 봤어요?

(예은) 초등학교 때요.

(예은) 흰둥이는 조그만 강아지니까 강아지 똥이에요.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어요.

(최병하 교사) 강아지 똥이 왜 묻었을까?

(예은) 더럽다고 해서요.

(최병하 교사) 그렇지 사람들이 더럽다고 못 생겼다고 하니까 강아지똥이 울고 있지?

(나레이션)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는 예은이를 또래 친구들이 이해하기엔 쉽지 않은 일. 갈수록 감정 조절이 어려워져 학교 생활이 버거워진 예은이는 얼마전, 지적장애진단을 받았습니다.

(최병하 교사) 초등학교때보다는 많이 괜찮아진 것 같은데 초등학교랑 중학교랑 다른 게 초등학교는 담임선생님 위주로 수업이 이루어지지만 중학교는 과목마다 선생님들이 매 시간마다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일일이 예은이를 신경쓰지 못하기 때문에 예은이가 안정감도 덜하고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나레이션) 장애가 있는 예은이가 따라가기에는 수업도, 친구들과 관계도 어렵기만 합니다. 게다가 최근엔 약이 다 떨어져서 감정기복이 더 심해졌다는데요. 예은이가 학교보다 집을 더 좋아하는 이유겠죠.

(예은) 예전에 탄 약을 다 먹어서 없어졌어요.

(PD) 약을 안 먹으면 많이 힘들어요?

(예은) 네.

(PD) 어떤게 제일 힘들어?

(예은) 친구들이랑 싸우는 게 힘들어요.

(나레이션) 아픈 자식들을 생각하면 아빠 효철씨는 속이 상합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은데 현실은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대출금 상환에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점점 더 버거워집니다.

(PD) 하우스 안이 엄청 덥네요?

(아빠 곽효철) 네

(PD) 안 더우세요?

(아빠) 더워요.

(나레이션) 숨이 턱턱 막힐 정도지만 한 푼이라도 벌려면 참고 견디는 수 밖에 없습니다.

(PD) 평소에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아빠) 건설현장에 다니기도 하고 택배일도 하고 지금은 농사일이 급해요.

가족들을 위해서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 가리지 않고 해온 아빠. 하지만 살림은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지. 집 한칸 없이 아픈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것 같아 아빠는 자꾸만 미안해지는데요. 아무리 애를 써도 형편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PD) 지금 있는 집에서 나가야 된다고 들었어요

(아빠) 네. 제가 쓰레기를 태우려고 불을 지폈는데 지붕에 구멍이 났어요. 옆에서 지켜보면서 태웠는데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집을 비워달라고 했어요.

(나레이션) 당장 며칠 내로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네 식구가 지낼 방 한 칸 조차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요. 어린 자식들과 길바닥에 나앉게 되게 되지 않을지 앞이 막막하기만 한 아빱니다. 택배 일을 할 때 밥 값과 기름값이 아까워 좁은 차 안에서 먹고 자며 돈을 아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PD) 어디 가시는 거예요?

(아빠) 밭에요

(PD) 다른 일이 있으세요?

(아빠) 네 또 다른 밭으로 일하러 가야해요

(나레이션) 온 종일 흙투성이 장갑을 벗을 시간도 없이 고된 노동이 이어지지만 아빠는 가족들을 위해서 멈출 수 없습니다.

(나레이션) 불편한 거 투성이였지만 그래도 네식구가 지낼 수 있는 방 한칸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지내온 날들이였습니다. 하지만 한번의 부주의가 부른 화재는 이 작은 보금자리마저 앗아갔는데요. 당장 아이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엄마의 한숨이 깊어만 갑니다.

(PD) 방이 하나인가요?

(엄마) 네.

(PD) 네 식구가 이 방에서 다 지내시는 거예요?

(엄마) 네.

(PD) 불편하시지는 않나요?

(엄마) 불편한 건 딸 아이가 커가면서 2차 성징이 오니까 약간 불편하죠. 동생도 옷을 훌렁 벗고 딸도 아직 인식을 못하니까 아빠 앞에서도 옷을 훌러덩 벗고. 조심한다고 해도 잘 안돼요.

(나레이션) 이사도 이사지만 각종 공과금도 수개월째 밀린 상황. 그동안 의료보험을 내지 못해 예은이는 병원에도 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PD) 의료보험도 못 내실 정도로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어요

(엄마) 네. (공과금이) 많이 안 나오는데도 대출상환금, 생활비 내고 나면 밀려버리고 전기요금도 지금 4개월이 밀렸는데 겨우 두 달 치만 내고 두 달 치가 밀려있고 상수도요금도 거의 10개월 치가 밀려있어요.

(나레이션) 아르바이트라도 하고 싶지만 은경씨는 오래동안 앓아온 우울증과 고혈압, 당뇨 휴우증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데요. 최근에 이사 걱정에 엄마의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고 합니다.

(나레이션) 수업이 끝나자마자 어디론가 바삐 달려가는 예준이. 예준이는 누나 예은이와 함께 일주일에 세 번 학교측의 지원으로 미술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ADHD 증후군을 앓고 있는 남매에게 집중력을 높이고 자기 조절력을 키워주는 미술치료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안윤희 미술학원 원장) 그러면 예준이 생각대로 그냥 색칠해 봐요.

예준이, 예은이가 항상 밝은 성격이고 학원에서도 티 없이 순수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이번에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 소식을 듣고 굉장히 많이 안타까웠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예은이와 예준이한테 많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레이션) 그날 오후, 엄마 은경씨와 아이들이 상담센터를 찾았습니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예은이와 예준이가 심리 치료를 받는 날인데요. 치료를 시작한 후 아이들의 정서가 많이 안정됐다고 합니다.

(심리치료사) 예준이에 대해서 알아보고 예준이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할거야.

(나레이션) 누나 예은이는 지난 달 지적장애 판정이 나와서 앞으로 치료 지원을 받게 되는데요.

(심리치료사) 이게 왜 좋은지에 대해서 설명해 줄 수 있어요?

(예준) 낙지

(나레이션) 예준의 경우, 아직 정확한 장애진단이 나오지 않은 상태.

(심리치료사) 또 뭐가 있어요?

(예준) 된장찌개

(심리치료사) 된장찌개 좋아하는구나? 선생님도 너무 좋아하는데

(나레이션) 다행히 심리치료를 통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가고 있는 예준이.

(엄마) (아이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좋아졌죠. 여기 상담센터에서 심리치료를 받은 지 1년 좀 넘었거든요. 많이 좋아졌어요.

(나레이션) 감정 조절이 어려웠던 예은이도 대화를 통해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대요.

(신은정 심리치료사) 옛날에 예은이는 선생님이 뭐라고 하면 계속 화내고 짜증내고. ‘싫어요. 하지말아요. 기분 나쁘단 말이에요.’ 라고 했거든.

(나레이션) 예은이와 예준이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합니다.

(신은정 심리치료사) 자기통제나 감정조절이 전혀 안되어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에서 훈련을 했어요. 멈추고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반복적으로 훈련했더니 그런 부분들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이 지금은 자기 중심성이 강한데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다른 사람의 처지도 이해하고 그런 아이로 자라났으면 좋겠습니다.

(나레이션) 당장 집을 구하지 못하며, 지적장애와 ADHD 앓고 있는 남매를 데리고 거리에 나앉게 될지 모르는 예은이네. 네 식구가 희망을 잃지 않고 지금의 위기를 잘 이겨낼 수 있도록 여러분의 사랑과 정성을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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